IP : l Date : 13-09-21 12:34 l Hit : 1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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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굉장히 중독성이 강하다.
가짜 엄마가 되는 것은 대체로 그 남자친구나 친구가 내 조언을 좋아하고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그걸 높게 평가해주면서, 그쪽에서 "네 조언 없으면 내가 어떻게 살겠어"란 식의 피드백을 줄 때 시작된다.
처음부터 나는 이 불완전한 인간의 엄마가 되리라! 라는 마음으로 시작하는 사람은 없지 않을까? 기본적으로 가짜엄마 포지션을 자주 겪는 사람들은 자기 사람의 구분이 아주 확실해서 자기 사람과 다른 사람을 대할 때 차이를 두는 것에 의미를 두는 사람일 때가 많고, 그런 사람들은 겁이 많고 적어도 내 사람에게는 폭풍같은 신뢰와 애정을 확신받길 원하는 여린 성격을 갖기도 한다.
첫 시작은 상대가 원하니까, 그 쪽에서 자꾸 날 찾으니까, 그렇게 시작된다.
평소에 오지랍이 넓던 사람이건 아니건, 가짜엄마 역할은 몰입하기가 쉽다. 내가 어떤 결단을 내리는 것 보다 상대에게 결단을 제안하는게 훨씬 쉽고 실제로 상대는 내가 있을 때 내 조언을 받아서 더 나은 사람이 된다. 이 때 상대는 '난 역시 혼자는 안돼.' 같은 식으로 가짜엄마에게 확신을 준다. 처음엔 내가 이렇게까지 간섭하는게 잘못된거 아닐까 하던 가짜엄마는 계속된 상대의 독려에 점점 자신의 영역을 넓힐 용기를 얻는다. 자신있게 간섭하고 가끔은 조언을 구하지 않는 부분까지 조언을 하고 상대의 생활 전반에 조력자가 되는 것이 과한 간섭이 아니라 저쪽에서 필요로하는 도움을 주는 것이라 믿게 되는 것이다. 이런 가짜엄마의 믿음에 상대 역시 찬성한다. 왜냐면 가짜엄마를 만드는 사람들도 이런 종류의 무조건적인 관심과 배려를 오랫동안 바라왔던 사람이니까, 이 시점에서 이 관계는 양쪽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윈윈 같고 서로가 서로에게 딱 맞는블럭같이 느껴진다.
가짜엄마는 점점 더 상대의 삶에 몰입하게 된다. 껍질이 딱딱한 가짜엄마는 자기자신을 변화시키는 것 보다 상대를 변화시키는 게 빠르고 쉬운데다가, 상대가 나아지는 모습을 보는건 굉장히 성취감이 느껴지는 일이다. 어느 순간 가짜엄마는 자기 삶에 대해 생각하고 몰입하는 순간보다 상대의 삶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길어진다. 그리고 가짜엄마는 점점 더 헌신적으로 변한다. 상식적으로 이상할 정도의 헌신도 가짜엄마에겐 어렵지 않다. 굉장히 희생적인 헌신의 대가로 필요한건 상대의 기쁨과 발전, 그리고 가짜엄마의 희생에 대한 감사이다. 이런 헌신이 어렵지 않은 또다른 이유는 이미 내가 상대의 '엄마'라서, 사실상 그 상대 인생의 올바른 길을 지시하는 파일럿이 본인이라서, 그 희생이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보내는 사랑과 여유이지 손해보는 호구짓이 아니라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가짜엄마에겐 선택권이 있었고 어떤 강요도 받지 않았기에 아무리 말도 안되는 희생이라해도 가짜엄마는 그걸 통해 자존감이 높아지고 스스로가 더 가치있다고 느낄망정 쭈구리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가짜엄마는 이 과정에서 보상심리가 생긴다. 그걸 채워주기 위해서 상대는 그냥 사랑과 존경을 보내주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이런 관계는 영원할 수 없다. 어느날 가짜엄마와 굽힐 수 없는 치명적인 의견 불일치가 발생하거나 상대가 가짜엄마에게 자신을 동등한 존재로 인정해주길 원하는 순간, 또는 가짜엄마의 자리를 위협하는 존재가 나타나는 순간 이 관계는 빠르게 무너진다.
이 시점에서 가짜엄마는 자신이 상대의 선택에 영향을 주는 것이 이제까지 바친 희생에 따른 권리라고 믿게 되기 쉽다. 그러나 진짜 자식이라고 해도 언제까지 부모 말을 듣는건 아니고, 심지어 그 둘은 연인사이이거나 친구 사이이기 때문에 언제건 "왜 넌 늘 네가 하라는 대로 내가 하라고만 해?"라는 질문이 나올 수 밖에 없다.
또는 가짜엄마가 바쳐온 희생에 상응하는 상황에서 상대가 가짜엄마에게 적절한 응답을 하지 않아 가짜엄마의 보상심리를 건드렸을 때, 가짜엄마는 내가 이렇게까지 해줬는데 넌 왜 그만큼 해주지 않아 라고 묻게 된다. 그러나 가짜엄마는 일반적인 수준보다 더 많이 희생했고, 상대는 그것에 결코 응답할수 없다. 가짜엄마를 만드는 이들은 기본적으로 자기중심적인 성향으로 주변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경우가 많고, 그들은 결코 가짜엄마만큼 헌신적이거나 타인을 사랑할 수 없다.
어떤 식이건 관계가 흔들리면 그 때 부터 가짜엄마는 빠르게 무너진다. 우리 둘이 갈라서면 네가 더 힘들거라고, 난 너에게 하나도 받은게 없다고 믿었던 가짜엄마는 충격적인 사실을 마주한다. 바로 본인이 상대보다 훨씬 힘들다는 것이다.
가짜엄마는 이미 두명의 인생을 살고 있었다. 그 중 한명의 인생을 빼앗긴 순간부터 가짜엄마는 치가 떨리는 허전함과 공포를 느낀다. 어느 순간 갑자기 빼앗긴 내것이 아니었던 꿈과 욕망의 빈자리는 엄청나다. 게다가 내 맘대로 될 줄 알았던, 내 맘대로 되어줘서 가짜엄마에게 세상은 어느정도 통제할 수 있는 것이라 믿게 해줬던 인생이 사라지고 남은건 전혀 통제할 수 없는 가짜엄마 본인의 인생뿐이다. 가짜엄마는 진짜 가족이 아니라서 너무 쉽게 상대와끊어진다. 가짜엄마가 믿었던 딱 맞는 블럭은 가벼운 바람에도 무너진다. 가족이 아니어도 가족 못지 않은 끈질긴 인연이란건 사실 없는거 같다.
게다가 가짜엄마는 너무나 많은걸 희생해왔고 많은 것은 돌이킬 수 없다. 가짜엄마는 희생했던걸 후회하진 않지만 그건 이제 가짜엄마를 화나게 만든다. 이 개새끼, 양심도 없는 놈이라고 아무리 욕해도 바뀌는 건 없고 가짜엄마를 만든 상대 역시 가짜엄마에 중독이 되어서 아주 빨리 새 가짜엄마를 만든다. 하지만 가짜엄마는 새로운 상대를 찾기에 상처를 끌어안을 시간이 필요하고, 그 과정에서 또 상처를 입는다.
이제 가짜엄마에게 주어진 길은 두가지다. 다시 상대를, 어린이같고 돌봐줘야 할 것 같은 사랑스러운 불완전함을 찾아서 뻥 뚤려있는 절반의 인생을 채우거나, 아주 오래걸리겠지만 나머지 반에 다시 자기 인생을 채우는것. 후자의경우 전자와 같이 운명적인 결합은 느끼기 힘들고, 전자에비해 덜 강렬하다. 그래서 다시 언제든 자극이 주어지면 다 버리고 가짜엄마가 되려 뛰어들수 있다.
사랑은, 친구건 애인이건, 대등할 때에만 건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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