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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특별해라고 말하는 남자를 조심하라 -착각 함정-.txt

청명빛 2020. 7. 16. 09:00

http://mlbpark.donga.com/mp/b.php?p=1&b=bullpen&id=202007080044805389&

남친의 판도라를 여는게 아니었는데.. : MLBPARK

안녕하세요..28살 여자고 2년째 연애중인 동갑내기 남친이 있어요.남친의 페북을 구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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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글인데 제목이 "남친의 판도라를 여는 게 아니었는데"하고 비장해서 다들 남친이 양다리 걸쳤거나 성매매한 흔적 찾아냈다는 건 줄 알고 클릭해봤더니 "남친 페북 뒤져봤더니 전여친이랑 사귈 당시의 흔적들이...ㅠㅠㅠㅠ 나한테 남친이 존나 잘하길래 내가 존나 특별한 여친인 줄 알았다가 상처받음. ㅠㅠㅠㅠ" 이런 내용이라 댓글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패고 있음. 글쓴이가 20 대 초반 첫연애였음 그래도 사람들이 좀 위로해줬겠으나 28 살에 본인도 이미 연애 경험들이 있대. 근데 본인은 지난 남친들이랑 1, 2 년 만나다 헤어진 반면 남친은 전여친이랑 5 년이나 사귀었어서 자기가 마음이 무너진대나 뭐래나.


내가 굳이 여기까지 저 글을 끌고온 건 여기서도 저 사연 욕하자는 뜻은 아니고(이미 원사이트에서 잘 쳐맞는 중) 저 글쓴이가 하는 말 중에 여자들이 존나 잘 빠지는 위험한 함정 하나가 보여서. 바로 "나는 특별한 사랑을 하는 특별한 여자다."라는 환상 말야.


모든 사람은 어렸을 땐 자기가 특별하다고 믿고 픽션의 주인공에 이입하지만 커가면서 이 세상에서 자신은 주인공이 아니라 무수한 엑스트라들 중 하나에 더 가깝다는 걸 깨닫게 됨. 나름 사회적으로 성공했다는 사람들마저도 마찬가지임. 윗물에서는 윗급끼리 또 경쟁하기 마련이고 내가 아무리 잘났대도 나보다 더 잘난 인간들은 또 있거든. 특목고도 꼴찌 있고 서울대도 문 닫고 들어가는 애들 있고 내가 스포츠카 장만해봤자 호화 요트 개인 비행기 앞에서는 개털이지 뭐. 그만한 성공도 못해본 사람들이야 더 말할 것도 없고.


그래서 나이 먹은 성인이라면 다들 내가 초능력도 없고 외계 왕자 공주도 아니고 이번 생에는 재벌처럼 살아볼 일도 없고 전세계가 다 아는 수퍼 스타가 될 일도 없음을 알고 있지만 평범한 사람들이 그나마 특별해진 듯한 기분을 맛볼 수 있는 게 연애할 때임. 남자가 꿀 떨어지는 눈으로 쳐다보고 꿀 발린 소리 하면 그래도 내가 이 남자한테만은 절세미녀인 것 같고 팜므파탈인 것 같은 기분 말이지.


근데 문제는 남자들 중 약은 선수들이 여자들의 그 심리를 이용한다는 거임. 저 엠팍글에 나온 남자가 선수란 소리는 아님. 저 남자가 선수였음 구여친 흔적을 페북에 계속 널어놓는 초보적 실수를 했겠냐.ㅋ 구여친 진득하게 5 년 만났다는 거나 이 페북 사건 전까지는 현여친도 만족스러운 연애 중이었다는 걸 볼 때 저 남자는 그냥 괜찮은 남자같음.


이건 저 엠팍글을 떠나 일반론인데 여자들은 다들 연애를 통해 특별한 여자가 되고 싶은 욕망이 있음. 남자들도 그런 욕구가 아예 없진 않은데 전통적인 성역할 구별 때문에 여자들이 남자들보다 더 적극적으로 연애를 통한 자아 실현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음. 남자에게 특별하게 사랑받음으로써 자신의 특별한 가치를 확인받으려는 심리 말야.


그리고 선수들은 여자들의 그 욕구를 파고듦. 존나 아가리를 털어댐. 너같은 여자 처음이야, 우린 정말 잘 통하는 거 같아, 너는 다른 여자들이랑은 달라, 내가 여자 때문에 이런 감정을 느낀 건/이렇게까지 한 건 네가 처음이야 등등 그 여자를 특별한 여자로 포장해주고 동시에 그 특별함을 알아보는 자신을 그 특별한 관계의 다른 한 축으로 놓음. 섹스할 때도 비슷한 입털기로 여자를 팜므파탈 병에 빠트림.


본인이 원하는 자아상과 현재 자신의 상태가 괴리가 큰 여자들일수록 이런 입털기에 잘 넘어감. '나는 특별하고 싶은 욕구를 가진 평범한 사람이다' 를 그냥 현실로 인정하고 사는 여자들은 만난지 얼마 안 된 남자가 저리 입을 털어대면 '...이 새끼 날 언제부터 알았다고 이리 급발진이지? 여자들만 보면 이런 소리 하나?' 하고 경보가 울리는데 평소 자신이 특별하지 않다는 사실에 대한 좌절이 너무 컸던 여자들의 경우 자기가 듣고 싶은 소리들을 해주며 환상을 만들어주는 남자에게 저항력이 없음. 세상은 나를 오해하지만 이 남자만은 나를 알아준다, 진짜 운명의 그이를 만났다 믿고 남자가 제공해주는 가상현실에 바로 몸을 던짐.


간혹 아직 남자랑 몇 달 안 사귄 여자가 이 남자랑은 너무 잘 맞고 처음부터 통했다고 말할 때가 있는데 이게 진짜 인연이어서 그럴 수도 있지만 사실은 남자가 여자 머리 꼭대기에 있어서 여자를 정신조종 중이라 그런 거일 수도 있음. 원래 남자들이 여자들보다 사회적 지능이 떨어지기 때문에(...) 평범한 남자라면 제 아무리 최선을 다해 보빨에 임하더라도 뭔가 여자 성에는 안 차고 왜 이리 센스가 없지 싶은 구석들이 있기 마련임. 저 엠팍글 남자도 미처 페북 전여친 포스팅들 처리를 못한 바람에 현여친 심기를 건드렸잖아. 근데 남자가 여자 마음을 귀신같이 읽고 알아준다? 그건 그 남자 눈엔 그 여자 속이 다 보이고 그 여자를 어떡하면 환각에 빠트릴 수 있는지 그 남자가 훤히 안단 소리임.


남자와 여자는 연애 초기 전략이 다름. 처음에는 남자가 여자에게 구애하는 게 일반적이다 보니 여자는 소극적이고 남자는 적극적임. 이 때 여자들은 흔히 도도한 척 수동적으로 있는 게 자기 가치를 높이는 거라고 믿기 때문에 남자가 적극적으로 자기 비위 맞추고 아부하는 걸 '이 남자가 이만큼 나에게 푹 빠졌고 내가 이 남자 위에 있다'라고 해석함. 여자가 같은 방식으로 남자에게 구애할 경우 그건 자존심 다 갖다버린 없어보이는 짓 취급받거든? 그러니까 남자가 지금 자기에게 그 없어보이는 짓을 하는 걸 내가 갑이고 이 남자가 을인 상황으로 인지하는 거야.


근데 그게 꼭 그렇지가 않음. 진짜 남자가 순진하고 좋아하는 여자 앞에서 쫄아붙는 바람에 여자 떠받드는 경우도 있지만 '그게 여자를 함락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이기 때문에' 초반에 을을 자처하며 여자를 떠받들어주는 척 하기도 함. 이건 내가 예전에 마폴에 썼던 독후감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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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여우들은 상대가 자기 자신을 여우라고 믿게 만들어요. 상대로 하여금 '내가 지금 얘를 꼬시고 있다.^^ 얘가 지금 내 여우짓 수완에 낚이는 거임.^^' 하고 생각하게 만드는 거죠. 사실은 이쪽이 상대를 그리 믿게 만들고 조종하는 거지만요.

제가 본 책에 나온 예는 인도네시아의 수하르토였어요. 어느 예쁜 미국 유부녀 여기자가 수하르토를 만났는데 수하르토는 그녀에게 친절했고 몇 달 후 그녀에게 서방에서 출간될 자기 전기의 작가가 되어달라고 청해요. 그리 잘나가는 언론인은 아니고 그냥저냥한 연예인 가쉽이나 다루던 기자였던 그녀는 전기 작업은 핑계고 수하르토가 자신을 꼬시려는 게 아닌가 의심합니다. 실제로 수하르토는 바람둥이로 유명했거든요.

하지만 의심이 간다 해도 수하르토의 전기 작업은 그냥 그런 저널리스트였던 그녀에게는 놓칠 수 없는 미끼여서 그녀는 다시 그를 만나요. 그리고 테스트를 해봅니다. 일부러 호텔방이 별로라고 불평도 하고 개인 조종사 딸린 비행기랑 헬리콥터 대령해달라고 갑질도 해요. 수하르토는 비굴할 정도로 친절하게 들어주고 은근슬쩍 그녀에게 스킨쉽 시도도 합니다. 그녀는 진짜 이놈이 나한테 성적으로 관심 있구나 생각해요.

그녀는 자신이 유부녀라는 이유를 내세우며 수하르토랑 진짜 깊은 관계는 맺지 않고 피합니다만 적당한 플러팅은 즐기면서 전기 작업을 해요. 그게 자기 경력에도 도움이 되고 어쨌거나 한 나라의 독재자의 관심까지 끌어봤다는 건 자존감도 높아지는 일이니까요. 늙어서 무용담이 될 일이죠. 수하르토랑 끝끝내 깊은 관계는 안 맺고, 즉 '몸은 안 주고' 갑질하며 국빈 대접 받고 전기 작업이라는 큰 건만 해치웠으므로 그녀는 자신이 매력으로 수하르토를 낚아 크게 한 몫 봤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건 모두 수하르토의 의도였어요. 독재자라 아시아의 히틀러 소리 들으며 서방에서 이미지가 바닥이었던 수하르토는 자신에 대해 호의적으로 전기를 써줄 서방 작가가 필요했어요. 하지만 똑똑하고 프로페셔널한 언론인은 거기에 협조해주지 않을 거거든요? 그래서 수하르토는 일부러 능력치가 적당히 떨어지면서 외모는 예쁜 여자 기자를 골랐습니다. 그녀의 자존감을 한껏 비행기 태워주면 그녀가 자신을 존나 신사로 묘사하는 매우 호의적인 전기를 써줄 걸 계산해서요. 실제로 그녀는 매우 호의적으로 수하르토를 빨아주는 전기를 미국에 출간합니다. 그래서 수하르토는 수컷 여우였던 것입니다...제가 본 책의 작가 말로는 수하르토는 마누라가 넷이었는데 마누라 각자 자신이 가장 사랑받는 아내라고 믿게 만들었을 거라고...이렇게 써놓으면 제가 본 책이 뭔지 궁금하신 분들도 있을텐데 로버트 그린의 유혹의 기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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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은 초반에 도도함을 내세우는 연애 전략을 구사하기 때문에 자기들의 그 특징을 남자에게도 투사해서 옴므 파탈들도 그리 도도할 거라 종종 믿곤 함. BL 의 메인공이나 로설 남주보면 주인수/여주를 제외한 다른 여자들에게는 존나 도도하고 냉정하잖아. 남자는 가만히 있는데 엑스트라 여자들이 알아서 쓰러지지.


하지만 현실의 바람둥이 옴므파탈들은 그런 식으로 작동하지 않음. 남자들의 구애전략은 가만히 앉아 도도함을 과시하는 게 아님. 현실에서는 인기남일수록 보빨도 잘하고 매너있음. 여자를 교묘하게 비행기 태우고 '나는 매력 넘치는 특별한 여자다'라는 환상에 중독되게 만드는데 그게 또 모쏠남들의 무작정 직진이랑도 다름. 경험 없는 남자들은 여자 비위 맞춘답시고 무작정 칭찬 쏟아부어서 여자를 부담스럽게 하지만 선수들은 여자가 방심하고 있을 때 훅훅 들어옴. 관찰력이랑 눈치가 좋아서 다른 남자들이 못 보고 지나가는 여자의 불편함을 세심하게 챙겨주기도 함. 여자는 자기가 특별해서 남자가 그리 공을 들이는 거라 생각하지만 그건 그 남자가 여자 사냥할 때마다 쓰는 전술인 거. 진짜 바람둥이는 만나는 모든 여자마다 '나는 이 남자에게 특별한 여자다, 이 남자가 진짜로 사랑하는 건 나고 내가 이 남자 쥐고 있다'라고 믿게 만듦.


그리고 '나는 특별한 사랑을 하는 특별한 여자다'라는 믿음은 유사연애에마저도 독이 됨. 빠질에 과몰입하는 빠순이일수록 "오빠에 대한 나의 마음은 연예인에 대한 흔한 팬심이 아니라 오빠를 진정 인간으로 이해하고 감싸안으며..."어쩌고 방언 써댐. 근데 내 존재 인지도 못하는 사람 모니터로 들여다보며 혼자 애착 느끼는 거 자체가 흔한 팬심임. 유사연애산업에 뇌를 잡아먹히면 누구나 그렇게 됨. 연예 산업이 빠순이들 쥐어짜는 기본 수법이 바로 연예인과 팬들 사이에 특별한 유대가 있다고 믿게 만드는 거임. 나는 특별한 팬이고 오빠의 인생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믿으면서 빠순이는 건너면 안 되는 강을 건너게 됨.


그나마 빠질은 나만 손 놓으면 끝나는 관계라 위험성이 덜한데 현실 연애에서 저 '나는 특별한 사랑을 하는 특별한 여자다'에 중독되잖아? 그 특별함을 증명한답시고 남자 먹여살려가며 별의별 고행을 다 하게 됨. 정신차리고 빠져나오려고 해도 그 때마다 남자가 너같은 여자 없다며 잡고 안 놔줌. 약아빠진 놈들은 평소에는 여자를 을 취급하며 섹스해주는 식모로 다루다가도 여자가 탈출하려들 때면 귀신같이 여자의 특별함 환상을 채워주더라. 저런 새끼들이 또 이벤트는 잘해요. 여자가 아파서 응급실 실려가도 나몰라라 하다가 여자가 도망간다니까 여자 집앞에서 밤새는 새끼도 있음, 나 원. 근데 여자는 자기가 안 좋아하는 남자가 집앞에서 밤새면 경찰에 신고하겠지만 애초에 그 남자를 좋아해서 을질도 해왔던 거라 드디어 내 특별한 사랑이 보답받는다고 남자 다시 받아줌.........이 뭐 병크 친 오빠 초췌해 보인다고 다시 품는 빠순이 팔자가 차라리 더 낫지. 코로나로 빠순판 재미없어져서 리얼충들 사는 거 구경했더니 거기가 더 지옥이데. 남자 보는 눈 없음 연애보다는 빠순질이 그나마 안전한 루트같음. 구오빠 성추행범인 거 좆같지만 그 새끼랑 수십년 같이 산 구새언니보다는 내가 나은 듯.

출처 http://heilt.egloos.com/m/74949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