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달샘

사랑이 배신해도 우정은 남는다

청명빛 2023. 5. 7. 09:26

어른이 된 후 다시 ‘빨간 머리 앤’을 읽기 시작했을 때 몇 번 만나지 않은 다이애나에게 다짜고짜 ‘영원한 우정’이라든가 ‘죽는 날까지 함께하겠다’는 맹세를 하는 장면을 보고 당황했다. 사람과 사람 사이 거리를 존중하는 쪽이라 더 그랬던 것 같다. 하지만 여러 번 읽고 난 후, 앤의 행동을 이해했다.

앤이 태어난 1900년대 초반에는 아동 인권을 중시하지 않았다. 그렇게 어린 앤은 쌍둥이 아기를 돌보는 일을 했다. 얼마나 뛰어놀고 싶을 나이인가. 앤의 소원은 친구를 사귀는 것이었다. 그 마음이 얼마나 간절했는지 앤은 청소하다가 찬장에 비친 자기 얼굴에 '캐시 모리스'라는 이름을 붙였다. 캐시는 앤의 유리창 속 친구였다.

얼마 전 '조선에서 백수로 살기'의 저자 고미숙 선생을 만났다. 그녀는 자본주의가 너무 '사랑'을 강조해서 '우정'이 폄하되는 게 안타깝다고 했다. 사랑의 기본은 '독점과 배타적 소유'다. 그래서 집착을 낳기 쉽고 화폐와 긴밀히 연결된다. 이런 관계에만 몰입하면 존재가 작아진다. 또 가족 관계는 애증과 부채감이 기본이라 수평적 대화가 어렵다. 사랑과 가족을 초월해 우리를 가장 성장시키는 건 '도반(道伴)' 즉 우정이라는 게 그녀의 말이었다.

연암 박지원은 10대 시절 심한 우울증을 앓았다. 그런 그를 일으켜 세운 건 여러 책과 친구였다. 박제가, 이덕무 등 친구들은 탑골공원에 모여 천문과 음악 예술을 논했다. 한량이었던 연암이 고립되지 않은 건 모두 동무면서 선생이었던 친구들 덕분이었다. 거울로 나를 보는 건 ‘나’라는 ‘자아’에 맞춰져 있다. 하지만 ‘창문’을 통해 나를 보는 건 길과 나무, 그곳을 오가는 사람들, 즉 ‘관계’ 속의 ‘나’에 맞춰져 있다. 어느 쪽이 더 큰 세계를 보게 될까. 고립과 자립은 다르다.

https://n.news.naver.com/article/023/0003490401?sid=103


남자친구를 사귀면 남친이 동성친구보다 우선한다는 건 사회적으로 합의된 사항이다. 그렇다고 해서 대놓고 친구를 아무렇게나 대해서 우정에 상처줘도  된다는 건 아니다.

-남친과의 약속전에 끼워넣어 시간 떼우기용으로 만들거나
-친구와의 대화의 주제가 항상 남친이고, 기승전남친이고, 남친하소연용 감정의 쓰레기통으로 만들거나
-결혼하고 돈몇푼에 연락 끊는 축의금 먹튀짓
이런 행위들은 동성친구사이에 인심을 잃고 스스로 고립을 자초하는 행위다.
남친•남편이 동성친구보다 편의를 많이 봐주는건 사실이지만, 신체목적이거나 돈목적으로 이용당할 수 있고 가스라이팅 같은 정신적 피해를 끼치기도 한다.
결혼하든 이혼하든 우정은 변치 않는다. 기꺼이 친구들은 발벗고 해결책을 제시해주려고 한다.

자신의 친구 무리가 내 흉금을 털어놓는게 내 약점이 될것같다면 내가 감당가능한 허용범위만큼만 말하는게 원칙이되, 친구를 깊이로 내 안에 특별함을 나누기 보다 두루두루 사귀면서 같이 있을때 편하고 경쟁심이나 긴장감이 안드는 동성친구와 인연을 이어나가면 된다. 그런 친구들에겐 설사 내 남편이 바람을 피웠대도 나를 우선으로 생각하고 내 인생을 진심으로 응원할 친구들일테니까.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 나아가 새 가정을 일구는것은 지금의 내가 속한 가족보다 1순위가 되는 일이다. 물론 소중하고 잘 해나가야함은 맞지만 본가와 친구관계가 후순위라고 해서 '없어도 되는 존재'라고 착각하고 등한시하면 안된다. 예를들어 친구의 생일과 남친 생일이 겹쳤다 칠 때 그친구가 매년 내생일을 챙겨줬던 사이라면 양해를 구하고 잠깐 만나서 선물 챙겨주거나, 미리 날잡고 축하하면 될것을 팽시켜버리면 친구도 잃고 남친도 잃는다. 남친외의 인맥이 많은 사람은 보고듣는게 있어서 정보가 빠르다. 인간은 사회적동물이라 고립되고 스트레스나 비밀이 많을수록 답답함을 느끼고 우울함을 느낀다. 나랑 안맞다고 바로 손절하기 보단 한번은 맞춰보려 노력하고 손절하고, 경제력차이나 성향차이 관심사 차이 등으로 소원해지는 가장 큰 원인중 하나가 결혼인데 다른 기혼친구나 동네친구라도 깊게 안 친해도 안면정도 트고 지내는 게 좋다. 인생은 길고 혼자서 다 해낼수 없고 반드시 그 안에서 배우는게 있다.